일상과 생각

이준석은 어떤 인물일까

무루우욱 2021. 6. 1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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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세 0선의 인물 이준석이 제1야당의 대표가 되었다. 6.11 국민의 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후보가 합산 지지율 42%를 차지해 2위인 나경원 31%을 제치고 당선됐다. 초반엔 열세였던 0선 이준석 후보가 거센 돌풍을 일으키며 보수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어린 나이와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정치인이 당 대표가 된 것은 여의도 정치의 큰 충격이며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그럼 이준석은 어떤 인물일까 ? 


이 준석은 1985년 서울시 상계동에서 태어났다. 월촌중학교와 서울과학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생회장을 역임했다. 고등학교 졸업후 카이스트에 입학했으나 중퇴 후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 곳에서 경제학과 . 컴퓨터학과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교육 봉사 단체인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의 대표를 맡으며 대표교사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2011년 12월 박근혜 대선후보에 발탁되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다. 박근혜 키즈라고 불러지며 파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입문한다. 박근혜 정부 탄생에 큰 역할을 하며 비례 대표직을 제안 받지만 불출마 선언을 하며 후에 험지인 노원구 병에 선거를 나선다.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면서 이준석 정치인의 길은 험난했다. 20대 총선에서 노원 병에 안철수 후보와 맞붙어 31.3%로 낙선하게 된다. 정치 신인에게 거물 안철수의 벽은 높았다. 하지만 젊은 보수라는 이미지를 굳혔고 인지도를 높힐 수 있는 발판이었다. 그 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박근혜 키즈였던 이준석도 그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고 탄핵에 대해서 찬성했으며 결국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바른정당에 합류한다. 

 하지만 친박의 프레임을 그를 계속하여 따라다니며 친박의 꼬리표를 스스로 부정하며 자기모순적인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그 후로는 유승민 계로 분류되며 19 대 대통령 후보 유승민 후보를 돕기도 했다. 이 후 그의 정치길은 순탄치 않았고 서울의 택시기사로 근무하기도 하고 홍콩민주화 운동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 

미래통합당으로 통합 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노원구 병에 출마했다. 하지만 44.3%로 김성환 후보에게 패배하며 낙선하였다. 3번째 낙선으로 그의 정치 여정은 험난해보였다. 하지만 노원구 병이 쉽지 않은 선거구였고 보수정당 후보로서는 가장 높은 득표율이었다. 

 

국민의힘 홈페이지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오세훈 후보를 도우며 당선에 일조했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발군의 토론 실력은 젊은층에게 관심을 끌게했다. 오세훈 후보의 당선과 20대 남성층의 절대적 지지를 이끌어내며 완승했다. 그 후 각종 시사토론, 방송에서도 당시 패널들을 논리로 무너뜨리며 관심을 끌었다. 특히 페미니즘의 극단적인 면을 비판하며 여러 패널 토론자들을 멘붕(?) 시키는 등 그의 논리와 빠른 두뇌회전력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국민의힘 대표에 출마하면서 그의 능력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연륜과 경험이 우위인 중진 후보들을 상대하면서도 밀리지 않고 오히려 젊은 층의 지지를 더 불러일으킨다. 기존의 정치의 염증을 느끼고 있던 20.30대 국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다. 결국 6월 11일 전당대회에서 높은 지지율로 이준석은 당대표에 당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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