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잉원은 2020년 1월 11일 열린 제15대 대만 정·부총통 선거에서 중국국민당 후보 한궈위 가오슝 시장을 264만여표 차이로 누르고 제15대 중화민국 총통에 당선되어 재선에 성공했다. 홍콩 시위가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홍콩에서 자유가 억압 받는 모습을 지켜본 대만 국민들이 주권수호를 주창한 차이잉원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차이잉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
차이잉원은 1956년 8월 31일 생이며 타이완 대학에서 법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코넬 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또 영국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국제 무역과 통상법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타이완으로 돌아와서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고위 각료를 역임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행정부에서 발휘하기 시작했다. 차이잉원은 민주진보당의 천슈이벤 정부에서 행정원 대륙위원회의 주임 장관을 역임했다.
차이잉원은 2015년 4월 15일에 민주진보당의 총통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2016년 중화민국 총통 선거에서는 중국 국민당의 주리룬 후보를 누르고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으로 선출되었다. 가문의 배경이나 특별한 후광 없이 자신만의 능력으로 당선된 입지적인 인물이다.
차이잉원은 타이완의 총통을 역임하던 동안에 타이완의 민주주의, 자유의 가치를 중시하는 한편 2025년까지 타이완의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는 탈원전 정책, 타이완의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고 동성결혼을 법제화하는 정책 등을 시행했다. 하지만 경제 정책, 연금 개혁 정책 등을 놓고 야당인 중국 국민당과의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리고 꾸준히 대만 독립의 주장을 펼쳤다. 또 중화인민공화국이 내세우는 일국양제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재선에는 다소 부정적인 기류가 많이 보였고 실질적인 지방선거에서도 참패를 거듭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홍콩시위가 차이잉원 당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거세진 반중국 정서에 힘입어 전세는 역전 되었고 대만의 독립을 더욱 더 강력히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시진핑 정부와도 반목하며 ”우리는 늘 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방어능력을 갖추고 발전시켜야만 할 것“ 이라는 말을 했다.
당선 이후 미.일과도 접촉하며 차이잉원 총통은 안보는 미국과 연대하고 경제는 일본과 협력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또 앞으로 대만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과의 잦은 충돌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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